KOYO 생활속 추억들 코너

  퍼온글
  어머니의 큰 말씀
  


198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집을 구하려니, 부산에서 힘들게 마련한 24평 아파트를 판 돈으로는 여의도에 있는 18평 아파트의 전세금도 되지 못했다. 겨우 처형에게 200만 원을 빌려 전셋집을 마련했다.

10년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온 나를 대학 동기들은 무척이나 반기며 서로들 집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의 집에서 난 속이 편치 않았다. 그들의 살림살이 때문이었다. 넓은 아파트에 멋진 실내장식, 값나가는 가전제품 등 모든 것이 우리집과 달랐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대학시절엔 나보다 못한 친구였는데…’ 하는 생각에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더 답답해지기만 했다.

그 뒤부터 나의 서울 생활은 짜증의 연속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더 좁게 느껴졌고, 살림살이는 더욱더 초라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재산 한 푼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가난한 처갓집마저 은근히 미워졌다.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시시한 월급쟁이 그만두고 도와줄 테니 사업을 시작하라고 나를 부추겼지만, 왠지 무시당하는 것 같아 화를 내며 돌아서 버렸다. 그러다 보니 아무 잘못도 없는 집사람에게 괜한 짜증만 늘어 갔고, 어느새 아이들에게도 신경질적이고 성실하지 못한 아빠가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어깨가 쳐져 지내다가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간 날, 얘기중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너 요즘 왜 그러냐? 얼굴색도 안 좋고.” 어머니의 말씀에 난 기다렸다는 듯이 속내를 쏟아 놓았다.

“난 왜 이래? 남들은 부모가 물려준 돈 덕보며 잘도 살던데. 난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늘 그 자리잖아. 정말 사는 재미가 없어.”

어머니는 다 큰 아들의 못난 하소연을 듣고 기가 막히셨는지 한참을 아무 말이 없으셨다. 어색한 분위기에 멋쩍어진 나는 슬그머니 일어났다. 순간 어머니의 말씀이 나를 붙들었다.

“넌 하소연할 엄마나 있지, 난 엄마도 남편도 없다. 뭣이 그리 급하냐. 니 아버지하고 이 엄마는 시골에서 고추장 단지 하나 가지고 나와서 느이 일곱 형제 대학 공부까지 다 시키느라 먹을 거 한 번 배부르게 먹어 보지 못하고, 옷가지 하나 사치 부려 입지 않으며 뒷바라지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진호야, 물려줄 재산이 없어 미안하다만 넌 젊으니까 열심히 하면 아버지보다는 낫지 않겠니?”

어머니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 이후 한심하기 짝이 없던 내 방황도 끝이 났다.

2002-12-04 20: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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