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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할머니 품에 남겨졌습니다.

공사판을 떠돌며 생화비를 버느라 허덕이는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할머니는 산나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캔 뒤 밤이 하얗게 새도록

할머니는 그 나물을 다듬었습니다.

어스름 새벽이 되면 할머니는 나물함지를 머리에 이고

시오리 산길을 걸어가 나물을 장터에 내다 팔았습니다.

"애기엄마, 나물 좀 들여가구려. 싸게 줄게"

하지만 장사는 잘 되는 날보다 안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나는 할머니 없는 빈집이 싫었고 할머니가 캐 오는 산나물이

너무 싫었습니다. 숙제를 다하고 나면 으레 손톱 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나물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손톱 밑의 까만물은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깜깜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토요일까지 부모님을 다 모시고 와야 한다, 다들 알았지?"

중학교 진학문제를 의논해야 하니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시고 갈 사람이라곤 할머니뿐인데...

나는 선생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 어휴...."

허름한 옷, 구부정한 허리, 손톱 밑의 까만 땟국...

나는 내심 걱정이 되어 속이 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할머니 손톱 밑의 그 까만때를 보는 게

싫었습니다. 시무룩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습니다.

"저, 할머니.. 선생님이 내일 학교에 오시래요."

하는 수 없이 내뱉긴 했지만 할머니가 정말 학교에 오시면

어쩌나 싶어 나는 저녁도 굶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였습니다.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하, 할머니!"

선생님은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지영아, 할머니께 효도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선생임의 그 말씀에 와락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잡아드린 할머이의 손을 통통 불어

새빨간 생채기로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초라한 할머니를 부끄러워한다는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아침 내내 표백제에 손을 담그고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으셨던 것입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등에서 피가 나도록 말입니다.
2003-01-08 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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