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YO 생활속 추억들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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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하는 여자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올해도 나의 소원은 밥 잘하는 여자가 되는 것
나는 아침 7시에 인조눈썹을 붙이고 집을 나서는 일보다
가장 먼저 일어나 밥을 하다가
전화를 받거나 누군가 느닷없이 초인종을 눌러와
밥솥에 불끄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십 년의 학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3층 밥을 짓거나 죽을 쑤는 것은
전화벨이나 찾아온 손님을 탓하기 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결코 이 일만은 포기할 수 없음은
얼굴만 보면 빚 독촉하듯 밥 달라고 조르는 남자가 있는 한
각서를 쓰듯 오늘도 내일도 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은 남자가 밥으로 보일 때가 있지만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내가 밥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언젠가 여자에게 밥지을 일이 없어진다면
그땐 작업실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주방을 따로 꾸며
벽에는 고갱의 그림을 걸고 조리대엔 컴퓨터를 놓고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애인과 화상데이트를 하며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우아하고 품위 있게
금빛 찬란한 앞치마를 자랑하며
밥 짓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소식도 없이 애인이 찾아온다면
밥의 힘을 믿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가장 먼저 밥짓는 일이 될 것이다.

밥순이를 벗어나고 싶다 노래했지만 정작
누군가 내게서 밥짓는 이 일 마저 빼앗는다면
평생 직장을 잃을 게 뻔하니
세상의 반인 여자들이 설자리는 어디인가.
하고 싶은 일,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과
있을 때 잘해야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밤새운 내 시詩 한 줄에 감동하는 이 아무도 없지만
가끔은 내가 지은 밥에 세상을 얻은 듯
만복滿腹감으로 눈을 감기도 하는 내 밥의 독자가 있는 한
나는 밥 한가지라도 끝내주게 잘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내 가족과 아니, 세상의 모든 애인을 위해
2003-01-23 13: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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